2019.09.06 “일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작성자
강남교회
작성일
2019-09-05 11:12
조회
30
일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13절

<환영>
방학 동안 있었던 즐거운 일에 대해 나눠봅시다.

<지난주 점검>
지난 한 주간 말씀을 적용하거나 Q.T를 하면서 경험했던 은혜가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경배와 찬양>
●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 성부 성자와 성령(3장, 구 2장)
●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580장, 구 371장)

<본론>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최선을 다해 전쟁을 준비하고 싸워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워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움직이지 않으시기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만 전쟁을 치르려 해도 승리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해 영적 전쟁을 준비하고 싸우는 것을 느헤미야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백성의 절반을 병기를 가지고 성을 지켰고, 나머지 절반은 성을 건축했다. 그리고 백성 각자는 ‘한 손에는 병기! 한 손에는 짐!’이라는 원칙 아래 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세계를 살아가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업을 가지고 일터에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 사명을 동시에 주셨다.

신앙과 게으름-데살로니가교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너무 강렬해서 1800년대 유물론 철학자들을 자극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표어는 레닌이 공산주의를 만들 때 사랑의 첫 원칙이 되었다. 마르크스 역시 이 원칙을 적용하여 일하지 않고 자본으로 착취를 일삼는 자본가들을 공격하였다. 과거 소련인 소비에트 연방 헌법에도 원칙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공산주의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공산주의가 ‘능력에 따른 생산, 노동에 따른 분배’라는 이상적인 논리로 사람들을 유혹했지만 이는 인간의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악한 본질과 게으름이라는 영적 실체를 놓쳤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살후3:11).” 본문에서 게으르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일을 만드는 자들이었다. 시기와 분열과 다툼 등 악한 일에 있어 부지런한 자들이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영적 사실이 드러난다. ‘일하기 싫어하는 것은 게으름이 그 원인이며, 그 게으름의 실체는 악’이라는 사실이다. 달란트 비유 속에서 주인은 세 명의 종들에게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맡기고 타국으로 떠났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두 명의 종들은 맡은 만큼의 달란트를 남겼다. 이들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이 따랐다. 반면 1달란트를 맡은 종은 그대로 땅에 묻어두었다. 그에게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25:26)”이라 책망하셨다. 게으름은 단지 빈둥거리며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앞에서 신실하지 않은 것이며, 이것은 사탄의 본질과 동일하다.
본문은 일이 사명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그 일의 크고 작음 혹은 중요하거나 덜 중요함을 떠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어떤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서 선하고 신실하게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맡겨진 자리에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가 아니라 그 일을 얼마나 신실하게 담당하는지에 관심이 있으시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일의 현장으로 부르시고 항상 그 일을 통해 사명을 주신다.

게으름-사이비 신앙적인, 욕망적인
  데살로니가교회에도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본문에 의하면 이 게으름은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신앙적 게으름, 즉 잘못된 신앙에서 나온 게으름이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일하기 싫어하는 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신앙이 너무 좋아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으니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한다(11)”고 규정했다. 이 구절의 핵심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설령 그것이 재림 신앙으로 포장된다고 해도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게으름의 또 다른 실체는 인간의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12)”는 사도 바울의 권면에는 정직하게 일하고 그 일한 것을 가지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피곤하고 부담스러운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벌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인간들에게 있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에는 근본적으로 영적인 문제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그 수고의 대가를 가지고 먹고 살라고 하신 하나님의 사명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사명을 다했던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던 아담적 욕망이다. 때문에 우리는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 이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진정한 기독교인의 실체이며 본질이다. 잘못된 신앙에 의한 게으름이건, 내 본질적인 게으름의 욕망이건 모든 게으름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일한다는 것 자체가 사명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임을 기억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이다.

<질문>
① 우리가 하나님의 군대로 영적 전쟁을 감당할 때, 명심해야 할 두 가지 대원칙은 무엇입니까? (느 4:14,20)
② 게으름의 실체가 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살후 3:10~11)
③ 달란트 비유를 통해 볼 때, 일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마 25:26)
④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두 가지 부류의 게으름은 무엇입니까? (살후 3:11~12)
⑤ 내 삶 속의 게으름을 떨쳐내기 위해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부분들을 나눠봅시다.

<기도>
개인 : 말씀과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고 놓치고 있었던 경건의 부분이 있다면 다시 회복되고 세워지게 하소서.
교회 : 우리 교회에게 맡겨주신 지역과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나라 : 혼란한 세계 정세 가운데 우리나라를 지켜 주시고 사용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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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남문화교실 : 9/9(월) 오전 11시, 지하 식당